직장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와닿는 요즘


한창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에 누군가 말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고. 정정해야겠다. 그냥 누군가가 아니라 그는 현자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지 3년 차.
집에서 비정규 계약직으로 고정적인 업무를 보면서 최소한의 월급을 받고, 건건이 일를 받아서 하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다.

주변에서는 팔자 좋다는 말을 듣지만,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 직장 다닐 때 회사가 갑, 내가 을이었다면, 지금은 갑을병정무신임계에서 마지막 계의 'ㄱ'에도 못 미치는 슈퍼 '개'다. 직장인이 노예라면, 계약직은 그냥 멍멍이. 참, 강아지는 귀여움이라도 받지.

부당한 일은 직장 내에서도 밖에서도 똑같지만, 적어도 회사에는 규정이라도 있단 말이다. 그나마 제대로 된 계약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다 못해 내 돈 주고서라도 고용보험에 들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밖에 나오면 대충 구두(말)로 뭉개고 일부터 하자는 곳이 수두룩이다. 더욱이 상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가 한 푼이라도 아쉬워서 일만 주면 무조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돈이 다가 아니란 걸 모를까.

무엇보다 처음엔 이 나이에 번듯한 명함 하나 내밀 게 없다는 게 나를 위축되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은 퇴사할 때 이게 제일 무서웠다. 나는 직장이 없어도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고 정신을 다 잡으면서 굳은 결심을 하고 나왔지만, 그래도 내 자신을 '백수'라고 소개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랬다. 직장은, 원래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인 조직 내 안정감을 얻고  정체성을 실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봉이나, 월급 그 이상의 가치를 주는데, 직장을 나와서는 그야말로 '일=돈'이 되다 보니, 내 미천한 능력에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다 보면 그 분노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특히 나는 내 시간을 위해서 직장을 호기롭게 때려치웠는데, 직장 밖에서 내 시간의 가치는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수준. 그 입장 차이에서 오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다. 직장이 내 시간을 샀다면, 사회에선 내 성과가 나와야만 돈을 준다. 직장 다닐 때만큼의 돈을 벌려면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요즘은 정말 조금만 일하고 조금만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몇 번이고 무리한 제안을 고사해보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거절도 한두 번이지, 끊질긴 요청에는 장사 없다 정말. 어쩌면 프리랜서의 프리(Free)는 자유가 아니라 '공짜'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유급 휴가, 출산·육아 휴직, 연차, 그리고 그 외에 수당과 복지가 너무나도 그립다. 1년만 넘기면 당연히 나오는 퇴직금도. 고용보험만 들었어도 계약이 끝나거나 실직하고 나면 실업 급여로 한동안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분명 누군가는 내 이 모든 푸념도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정말이지 직장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이 와닿는 요즘이다. 그래서 다들 '존버(존나게 버티는 것)'가 답이라고 하나보다. 직장에서 버텼으면 연봉도 오르고 지금쯤은 직장 내 모든 생활이 익숙해졌을까. 하나마나 한 생각까지 해본다. 계속 직장에 다녔으면 내년이 11년 차가 되는 해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