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아이디 해킹 당해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던 썰
오늘은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네이버 아이디가 해킹 당해서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한 뒤 서울영등포경찰서에 다녀왔던 썰을 풀어볼까 한다. 때는 2023년 8월 중순의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네이버 아이디 로그인이 안 되더니 '새로운 환경에서 로그인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 6~7통 정도가 도착했다. 그중에는 비밀번호가 바뀌었다는 메일도 있었다. 메일을 열어보니 내가 사용하지도 않는 아이폰(iOS Safari) 기기로 접속한 기록과 함께 접속한 아이피 주소가 각기 다르게 기입돼 있었다.
별일 아니겠거니 해서 2~3일 정도 있다가 비밀번호를 바꾼 뒤 신경 끄고 있었는데 문득 어릴 적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내 번호로 친구의 엄마한테 부재중 전화가 있어서 무슨 일 있나 하고 연락을 했다는 것.
결론적으로는 보이스피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친구 엄마 핸드폰에 찍힌 부재중 전화번호는 '006-82-10-내번호 8자리'였다. 다행히 어머니는 용무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그래서 다른 피해는 없었다.
다만, 왜 친구도 아니고 엄마한테 내 핸드폰 번호 뒷자리 8자리를 가진 국제 전화번호로 전화가 갔을까. 해킹된 내 네이버 아이디에는 내 5년 전 전화번호부(주소록)가 업로드돼 있는 상태였다. '0엄마'라고 저장이 돼 있으니 우리 엄마인 줄 알고 전화를 걸어서 돈을 요구하려 했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더욱이 우리 엄마 번호는 네이버 계정에 업로드가 안 돼 있었고, 그 데이터는 5년 전 업로드해 놓은 기록이기 때문에 친구 엄마의 번호는 내 핸드폰에는 저장이 안 된 상태였다. 그래서 핸드폰이 아니라 네이버 아이디 해킹에 따른 피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사이버수사대를 찾게 된 것이다.
신고는 인터넷으로도 가능했다.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ECRM)을 통해서다. 근데 진술을 하러 꼭 근처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야 한단다. 솔직히 금전적인 피해도 없고 해서 귀찮은 마음이 컸는데, 그래도 또 해킹에 따른 다른 피해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2차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늦은 시간까지 신고서를 작성했다.
물론 심각한 피해도 없는데 다른 진짜 중요한 범인들 검거에 바쁜 경찰관들의 업무에 해를 끼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내 아이디를 해킹한 범인들이 또 진짜 피해자를 만들거나 앞으로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실은 네이버에서 메일로 보내 준 아이피(IP) 주소도 있고, 그 주소가 국내에 있어서 피해자 특정하기가 더 쉽겠거니 하기도 했음. 나... '컴알못(컴퓨터에 대해 잘 알지 못한)'...아이피가 여러 개인 것은 여러 명이 속한 집단의 소행 때문이겠거니라고 생각만 했다. 오히려 내 덕에 보이스피싱 집단을 검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뿌듯하기까지 했음.
신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은 매우 간소한 듯하면서도 나 같은 컴맹한테는 쉽지 않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신분증 사진과 증거 자료 접수 외에 일단 범죄 유형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고민의 연속이었다. 해킹의 세부 유형에 단순침입, 자료유출, 자료훼손, 계정도용이 있었는데 자료유출과 단순침입 중에 고민하다가 사건이 제대로 접수될 수 있도록 '단순침입' 해킹 사건으로 신고를 했다.
신고서에는 이외에도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을 기록하게 돼 있었고 접속된 아이피 주소와 시간들을 상세히 기입하도록 돼 있어서 일일이 확인하고 채워 넣는데 은근히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신고서 접수 중에 피해 금액을 적는 곳에 '0원'을 기입할 때는 정말 이 신고서를 볼 담당 수사관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죄책감이 들기도 했음.
그러나. 나는 꼭 범인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신고서를 다 접수하고 나니 내 핸드폰 번호로 민원 접수 번호가 도착했고,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관할 경찰서 혹은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바로 그다음 날 영등포경찰서를 찾았다.
아무래도 경찰서는 처음인지라, 어디로 갈지 몰랐고 일단 민원실로 갔다. 참고로, 민원실 대기 시간이 가장 길었음. 내 차례가 돌아와서 사이버범죄를 이미 신고하고 왔다고 말했더니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서 가는 길을 설명해 준 다음 포스트잇에 부서 전화번호와 해당 층수를 적어서 안내해 줬다.
경찰서 앞에 도착해서 방문증(이름과 전화번호 기입)을 쓰고 사이버수사대에 전화를 하니 수사관이 1층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다. 경찰서 내부에는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야 해서 담당관이 데리러 와야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서 1층에서 한 5분 정도 있으니 수사관이 내려왔고, 출입증을 찍어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위치한 사이버수사대로 함께 올라갔다. 경찰서에 오니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위축되고 울렁거렸다.
수사관을 만나서 인터넷으로 신고서를 미리 접수하고 왔다고 하니 잠시 사무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접수한 신고서를 뽑아 왔음. 대충 훑어본 뒤 설명해달라고 해서 상황 설명을 했더니 본인은 당직자라, 다음에 수사관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이 갈 거고, 한 번 더 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단 신고는 접수하겠느냐고 물어서 "하겠다"고 하고 내 신고서 모든 낱장에 지장을 찍은 뒤 돌아왔다. 이 작업은 혹시 제출한 내 신고서 낱장이 사라졌을 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대기 시간을 빼면 진술 시간은 한 5분도 안됐던 것 같고, 이런 일이 흔한지, 내가 몇 마디만 해도 무슨 말인지 척척 알아들으셨다.
사건을 접수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담당 수사관이 배정됐다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그 바로 다음날 오후 약속을 자고 바로 경찰서를 찾았다. 이제 담당 수사관이 배정됐으니 사건에 진척이 있으리라 잔뜩 기대하고 가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쉽지는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아이피 주소가 있어도 사실 이런 해킹 사건의 경우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피해 금액도 없는데 무리하게 수사를 요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서 알겠다고 하고, 혹시 해킹 당한 기간에 아이디를 도용해서 범죄에 이용하는 식의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더니 담당 수사관이 그러면 일단 추후에 해킹 피해 사실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확인증을 발급해 주겠다고 했다.
결국 해킹 피해 사실을 입증해 주는 '입시접수확인증'만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 사실 개인 정보(주소록)가 유출된 것 외에 더 이상의 피해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고 수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바쁜 경찰관들을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 빠르게 돌아섰지만 정말 아쉬움이 큰 경험이었음. 생전 처음으로 시간을 내서 경찰서에 2번이나 가고 신고서 접수에도 그리 공을 들였건만... 해킹은 현재 기술력 가지고는 잡기가 정말 힘든 범죄인가 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내 아이디는 내가 잘 지켜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소용없다. 요즘 포털에서 각종 페이다, 뭐다 해서 금융 결제 시스템도 연결된 경우가 많고 한데 이렇게 해킹 당하면 나만 손해니 각자 알아서 보안 설정을 강화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해킹 피해를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상으로, 네이버 아이디 해킹 당해서 경찰서까지 다녀왔던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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